본문 바로가기
도전

한국사의 이해 (조선)

by oncerun 2023. 1. 6.
반응형

 

고려의 권문세족 지배층 내부 갈등이 심화되면서 조짐이 보인다.

명나라가 건국되고 원 지배력의 약화로 권문세족의 힘이 약해지고 신진사대부 세력이 성장했다.

 

이때 이성계를 비롯한 여러 신흥무장 세력이 성장한다.

 

명의 철령 이북땅을 요구한다. 요동정벌을 추진하여 이성계가 출전하고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여 조선을 건국한다.

이때 한양으로 천도한다. 

 

태종 : 무인정사(왕자의 난), 왕권강화, 사병혁파

 

세종 : 의정부의 권한 강화, 문물제도정비, 전분6등법/연분9등법, 4군6진 개적/ 대마도 공격, 왜관설치, 집현전

훈민정음 창제, 농사직설 편찬하여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문종 : 고명대신

세조(수양대군): 계유정난, 강력한 왕권강화, 공신/종친들을 중용했다.

성종 : 훈척세력견제로 소장학 사림을 중용, 경국대전을 완성한다. 

 

정치

 

중앙에는 의정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6조(정책수립, 집행), 삼사(규찰-사헌부/사간원/홍문관)

승정원(왕명출남), 의금부가 존재한다.

지방에는 모든 군현에 지방관을 파견한다. 8도(관찰사), 주군/주현 속군/속현을 없애고 330개의 고을-수령, 면리제

민본정치: 신문고, 구언, 사관제

군사 : 오위도총부, 진관체제

 

 

과전법과 전세제도.

 

과전법은 사전개혁으로 시행한 토지분급제도로 전/현직 관리에게 수조권 지급한다. 

공전, 사전, 실질적으로 소유권은 따로 있어 농민의 소유권을 보호한다.

직전제 (세조): 현직자에게만 분급

관수관급제 : 수탈 폐단으로 인해 관에서 수급하여 배급

공법 : 전세를 결정하던 답험손실법 폐단을 방지, 양전, 전분6등법, 연분9등법

 

 

역역과 공물에는 부세(국정운영의 재정적토대, 신역제를 토대로 노동력 질발), 군역(천인을 제외한 16-60세)

요역, 공물(공물대장에 등록 시 생산여부에 상관없이 납부), 황정(흉년/재해 시 부세감면, 진제장, 의창(곡식대여))

 

 

신분과 직업

 

호적 : 인구/직역을 3년마다 작성한다. 오가작통법, 호패법(16세이상 남자)

법제적으로는 양천제(양인은 국역/군역참여, 천인: 국가/사적으로 예속)

양반 

기술관 

양인 농민

천민

조졸(선원)

 

조선 초기 사대교린을 따른다. 큰나라는 섬기고 이웃나라와는 화평한다.

 

명 : 천자-제후관계로 조공, 책봉을 통해 체제안정을 도모한다. 세종때 4군6진을 개척한다.

왜구 : 이종무 대마도 공격, 계해약조를 통해 내이포, 부산포, 염포 개항 및 왜관 설치, 왜구 침략 억제가 중요 목적이였다.

여진족 : 무역소 설치, 최윤덕 4군, 김종서 6진 개척

 

조선초기 문화와 기술로는 훈밍정음,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삼강행실도 언해본, 천문기사학의 발달도 주요 기술이다.

천문도(태조), 간의대(세종), 혼천의, 앙부일구, 자격루, 측우기, 정흠지 칠정산내외편(달력)..

 

시비법/파종법 개선으로 다모작을 한다. 수리시설 개선으로 상경전/수전비율 확대

정초 농사직설(세종), 경작법 (수사미, 건사미, 모내기), 밭농사(근경, 간종), 상경농법, 강희맹 금양잡록(성종)

 

 

훈구/사림의 대립.

 

훈구파는 건국공신/왕실외척들이 주축으로 성종초기까지 방대한 토지와 노비, 대외무역 등으로 재산 확장했다.

사림파는 재지사족들의 후예로 성종때부터 정계 진출하고, 중소지주적/성리학 중심이고 대표인물로 김종직, 조광조가 있다. 언관직/도덕정치, 향촌사회의 지배층.

 

연산군때 무오사화-사림파, 갑자사화가 발생-훈구파, 기묘사화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반발, 을사사화 - 윤임일파

백운동서원 건립, 사림파의 기반 교육기구로 훈구파로부터의 탄압 회피.

 

 

향촌 사회

 

사족이 거주, 토지개발과 농지확대로 면으로 편제, 향안작성, 향회개최

수령 보좌, 향리 감독, 지방 풍속 교화하는 유향소를 설치. 향약으로 고을 지배.

 

향약이란 사림파가 중심이되어 사족과 농민간 차별적 적용한다. 도덕적 규범을 설교하여 지주 전호의 대립을 무마하려는 목적이다.

"덕이 있는 일은 서로 권하고, 잘못은 서로 고쳐주며, 어려운 일은 서로 돕고, 예의로써 서로 사귄다"

 

 

성리학.

신진사대부층이 적극 수용하여 대표적인 인불로 조광조가 있다.

조광조는 지치주의, 왕도정치, 개혁정치를 주도한다.

서경덕, 이언적, 조식, 기대승, 김인후, 이황, 이이가 있다. 

 

이로서 문화가 변경된다.

 

가족/친족 제도의 변화로는 서류부가혼, 균분상속, 윤회봉사, 친영례, 자녀차등상속, 장자봉사제가있다.

부계중심 종법질서의 확립으로는 장자입양, 문중/동족촌락, 동성동본 혼인금지, 문집/족보 발간, 적서차별이다.

삼강오륜이 사회의 기본 규범이였다. 

 

대표적인 성리학 서적으로는 소학, 이황의 성학십도, 이이의 성학집요, 박세무의 동몽선습, 이이의 격몽요걸, 주자대전 전래, 이황의 주자서절요, 이황의 도산십이곡, 정철 관동별곡/사미인곡...

 

 

동아시아의 정세와 왜란과 호란.

 

1.일본의 침략.

 

선조때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력 갈등과 교역문제를 침략으로 해결하고자 조선을 침략한다. 대부분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옥포/당포/한산도 해전에서 이순신이 승리한다.

 

의병활동으로는 김천일, 우성전, 홍계남, 곽재우, 정인홍, 정문부, 조헌, 고경명등등이 특정 지역으로 활동하였다.

 

명이 참전하여 동아시아 국제 전쟁으로 확대되었으며, 평양/벽제에서 전투 후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정유재란 : 일본의 2차 침략으로 충정도 일대까지 점령당했다. 칠천량해전/명량해전 등이 발생.

 

이후 도요토미가 사망함에따라 도쿠가와 정권(에도시대)이 등장했고, 명의 세력 약화로 여진이 성장한다.

 

2. 청의 침략

 - 건주여진의 누르하치, 후금을 건국한다. 

 - 중립외교 -> 인조반정뒤 후금배척

 - 정묘호란(1627 인조) : 명 모문룡의 가도 주둔/광해군 보복을 명분으로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다. 강홍립의 중재.

 - 병자호란 (1636) 군신관계와 세폐 증가 요구 거절을 빌미로 청 태종 침략, 인조 남한산성으로 피난하고 삼전도에서 항복한다. (1637)

 

 

붕당의 확대.

 

붕당이란 특정한 학문적/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양반들이 모여 구성한 정치집단이다.

직전법으로 과거 합격자가 많아지면서 사림의 붕당이 상대당을 인정하지 않아 갈등과 권력다툼이 발생한다.

 

선조시기에는 이조전량직 논쟁으로 서인/동인으로 양분되었다. 기축옥사(정여립 사건)이후 정철 처벌 문제로 동인이 남인/북인 양분 된다.

 

왜란이후 북인 집권한다. 광해군이 지지한다.

인조반정이후 서인이 집권한다. 

이후 효정을 거처 현종즉위 후 서인/남인이 예송논쟁을 한다. :갑인환국

숙종에서 붕당을 교체하는 환국 : 경신환국(서인) -> 기사환국(희빈장씨, 남인) -> 갑술환국(서인)으로 교체.

기사환국으로 서인은 노론(송시열) / 소론(윤증/박세채)로 양분된다.

 

 

영/정조의 왕권강화

 

영조의 개혁 (1724-1776)

 

탕평책 : 당파를 고루 등용하여 왕권의 권위를 세우려는 목적

균역법 : 일반 군정의 군포 절감, 선무군관포와 토지의 결작으로 부담 경감

군영정비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이 도성을 나누어 방위)

 

정조의 개혁 (1776-1800)

 

규장각 설치, 병권을 일원화하여 왕권강화, 서얼/노비 차별 완화, 금난전권을 폐지한다.

수원화성 , 소원제도- 격쟁/상언/구언

영조의 탕평책의 한계로 이는 탕평당에게 권력이 집중, 정치의 보수화, 외척가문의 벌열정치, 이후 세도정치로 붕당정치가 종말된다.

문예 부흥기로 속대전, 대전통편, 동국문헌비고, 증정동국문헌비고, 여지도서, 해동지도, 호조 탁지지, 예조 춘관통고, 형조 추관지, 일성록, 무예도보통지, 동문휘고가 있다.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 변동

 

농업기술의 발달 : 이앙법으로 이모작, 견종법

상업적 농업 발달 : 의류작물(목화/모시), 특용작물 (인삼/담배/약재), 가내수공업/지역특산품 형성

지주전호제 : 농업/상업의 발달로 부유한 상민 지주가 탄생하고, 예속관계에서 계약관계(소작농)으로 변화, 임노동자층 형성된다.

수공업, 광업.

공인, 장인, 점촌, 매점매석발생, 은광 개발, 관영광업쇠퇴, 잠채/허가제 광산 성행, 물주와 덕대(경영자) 출현

상업의 발전.

고을마다 5일장, 전국1천여개 장시, 상업도시 형성.

전국구 상인이 등장한다. 경강상인, 개성상인, 의주상인, 동래상인

보부상단이 조직된다.

화폐로는 숙종때 발행된 상평통보를 사용, 화폐부족 현상이 발생할 정도였다.

 

 

 

대외 관계도 변화한다.

 

대청관계로는 효종/서인의 북벌론, 화이론(중국 존중 및 오랑캐 처치), 대보단(숙종), 태조/신종/의종의 제사로 조선중화의식을 심화한다.

성리학적 소중화의식을 비판하고 청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연행사를 통해 학자 교류, 경제/문화교류, 고증학을 한다.

 

대일관계로는 쇄환사 파견, 기유약조, 통신사 파견(12회), 문화사절단의 면모를 갖추어 예능/생활문화/기술문화를 교류한다.

 

서양문화를 수용한다. 허균, 정두원, 소현세자 등이 서양문물을 소개한다. 천주실의, 천문략등이 있다.

과학과 역법, 수학을 배우고, 지도와 천주교(서학)를 종교가 아닌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시작하였다.

다만 황사영 백서사건이후 반국가종교로 박해받았다.

 

세도정치.

 

왕의 척족관계에 있는 양반관료가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순조 : 김조순과 안동 김씨

헌종 : 풍양 조씨

왜란이후 비변사 강화 - 의정부/6조 약화

이로 부정부패, 매관매직, 재정위기가 온다.

 

사회 모순의 심화되면서 농민항쟁이 일어난다. 

 

농촌을 이탈하거나 와언, 괘서 등 집단적 저항운동이 발생.

대표적으로 홍경래의 난이 있다. 평안도에서, 부민층/임노도장들의 수탈과 지역차별에 불만으로 홍경령를 평서대원수로 하여 다복동에서 농민군이 봉기한다(1811) 하지만 정주성에서 토벌부대에 패배한다. 다만 이는 이후 농민항쟁에 영향을 준다.

 

농민항쟁은 전국 70여개 고을에서 항쟁이 발생한다(1862)

경상우도 진주 : 환곡/재정 부족분 부과에 불만하여 봉기한다.

경상/전라/충청까지 전파되어 여러계층이 참여하는 큰 규모의 농민항쟁이 발생한다.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부세개혁을 약속하지만 이를 미시행하자, 농민항쟁이 재발한다.

 

 

서민생활과 문화적가 향상된다. 

혀균의 홍길동전, 김만중 사씨남정기/구운몽, 춘향전 등 소설이 나온다.

경업전 : 탈춤, 장시의 놀이문화, 판소리, 민간싱앙, 정감록(후천개벽), 미륵신앙 등이 유행한다.

 

[문제]

삼사에는 규찰-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이 존재.

요역 : 조선 초기에는 주로 가호(家戶)의 민정 수를 기준으로 몇 정마다 1명씩 징발하였으나,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대 이후에는 경작하는 토지의 면적에 비례하여 차출하였다. 세종 대에는 토지 5결(結)당 1명을 징발하였는데, 이후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대에는 토지 8결당 1명 징발을 원칙으로 삼았다. 

 

1,3,4의 설명은 여진의 침략과 요의 침략을 다루는 고려시대를 다룬다.

 

 

성리학

 

정조는 수원화성, 장용영 설치(호위군대),  비변사에 의정부 중심 규장각설치하였다.

최승로의 시무28조는 고려의 성종때 시행되었다.

 

이앙법은 모를 키웠다가 옮겨 심는 방식으로 농업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지 감소되지 않았다.

 

녹읍 : 녹읍은 관리에게 고을[읍(邑)] 단위로 지급한 급여[녹(祿)]이다

환곡 : 환곡은 곡식이 부족한 봄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고가을에 원래 곡식과 일정량의 추가분을 거두던 제도 또는 곡식 자체

식읍 :  식읍은 동아시아에서 종친, 공신, 대신들에게 공로에 대한 특별 보상으로 주는 영지(領地)이다.

정전 :  정전제, 농지를 공동으로 소유/경작하여 노동일수에 따라 분배 (정약용)

 

판소리

의정부는  최고의결기구이다. 주요 정책을 결정하거나 보고하였다.

 

공법은 세종대에  전세를 결정하던 답험손실번 폐단을 방지, 양전 토지조사, 전분6등법, 연분 9등법이다.

정전을 지급하지는 않았다.

 

천문학문의발달로 간의, 자격루, 측우기가 발명되었다.

 

사대 사화로,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가 있다. 

사화(士禍)는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화를 입는 일이다.

 

향약은 향촌규약(鄕村規約)의 준말로, 조선 시대에 향촌에서 양반들의 자치활동을 보장받고 하층민을 통제하기 위한 규율이다. 또한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향촌사회에 보급하여 도덕적 질서의 확립과 미풍양속의 진작, 그리고 상부상조하기 위한 목적도 가지고 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항전을 모색하였다.

대동법(大同法)은 조선 중기인 광해군-숙종 시기에 지방의 특산물로 바치던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세금 제도이다.

방납의 폐해가 심하여 광해군은 선혜청을 두어 대동법을 실시하였다.

 

선혜청(宣惠廳)은 1608년(광해군 원년) 공물세로 현물 대신 대동미와 포·전을 받기 위해 설립한 관청이다. 이 관청의 미곡 창고로는 남창(南倉)이 있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