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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이해 (고려)

by oncerun 2023.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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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건국은 918에 하였다. 

 

송악의 호족 왕건

 

후고구려 궁예 휘하였던 왕건이, 신숭겸/홍유/배현경/복지겸과 정변을 일으켜 궁예를 축출하고 건국하였다.

 

후박제 견훤의 귀부, 신라 경순왕도 고려에 항복하면서 삼국통일(936)

 

고구려 계승의식이며 호족과 정략결혼, 사심관/기인제

 

사심관 : 사심관(事審官)은 고려 때의 관직이다. 해당지방의 관리를 지배, 감독하는 기구인데, 그 임무는 부역의 공평, 풍속의 교정(矯正), 신분의 구별 등을 기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인제 : 기인제(其人制)는 태조 때부터 시행된 고려 때 지방의 호족 자제를 인질로 상경 숙위(宿衛)케 하는 제도 및 관직이다.

 

고려의 지배체제와 사회

 

호족억압과 왕권강화

 

태조 : 훈요십조, 조세/부역 경감, 역분전 지급

광종 : 노비안검법 실시, 과거제

성종 : 최승로 시무28조로 유교이념에 의한 정치질서 제시

 

전시과 

전시과(田柴科)는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유지된 제도로서, 국가의 관료와 직역을 담당하는 자들에게 그 지위에 따라 조세(租稅)를 받을 수 있는 전지(田地)와 땔감을 채취할 수 있는 시지(柴地)를 지급해 준 제도이다.

 

 

신분    

 - 양인/천민      

- 귀족 : 신분상 양인이나 지배층으로서 경제력과 권력, 문벌 형성      

- 관료 : 문반과 무반, 음서(문음, 5품이상 고위 관료 자제를 등용)/공음전(세습가능)    

- 정호 : 군인/역 관련 종사 양인     

- 백정 : 일반 농민, 조세와 역역 부과 대상      

- 향, 부곡, 소      

- 역, 관, 진    

- 천민 : 공민으로서의 권리/의무 없음

노비 - 세습, 매매의 대상, 공노비/사노비(솔거,외거)           

화척(禾尺,유랑민)           

재인(才人,광대)

 

 

고려는 거란에 적대적으로, 발해유민을 포섭하고 거란침공을 대비해 광군을 조직했다.

송이 건국됨에 따라 송과 외교관계를 광종때 수립하였다.

 

요, 소손녕이 침공하였다. 서희가 강동6주를 확보한 것은 유명한 역사이다. 

요 성종이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공, 개경함락

소배압이 침략하였고 강감찬의 귀주대첩이 있고 이후에 화친을 맺었다.

 

여진의 침략

 

 - 여진 세력이 확장, 임간/윤관 토벌 실패

- 숙종때 별무반을 편성, 윤관/오연총 여진족 토벌 이후 9성을 축성

- 1109년 9성을 철수하였다.

- 금이 건국됨에 따라 군신관계를 수립하였다. 

 

 

고려전기의 사상과 문화는 다음과 같다.

 

1. 과거제 : 문반관료 선발 중심

2. 국자감, 향학 설치

3. 최충의 9재학당 이후 12개의 사립학당 설립

4. 김부식 삼국사기 편찬

5. 국교는 불교이나, 풍수지리설(도선)으로 사원의 난립을 방지. 

대규모 불상, 석탑 조성하였고 대규모 사찰도 건립함(현화사, 흥왕사)

6. 연등회/팔관회를 개최하였다.

7. 선종때  초조대장경 조판하였다.

 

 

몽골의 침입

 

1. 몽골의 1차 침략 : 의주/철주 함락, 개경포위, 다루가치 72명 파견, 강화도 천도, 항전 성포

2. 몽골의 2차 침략 : 환도요구, 용인전투, 서경전투

3. 몽공의 3차 침략 : 초조대장경 소실, 방호별감, 개주/온주/죽주/대흥 항쟁

4. 몽골의 4차,5차, 7차 : 포로 20만명

 

 

원의 간섭

 

권문세가 : 원 내정간섭기에 원의 세력을 등에 업은 군인/역관/환관출신 세력.

황무지 개간, 타인의 땅을 빼앗아 토지 소유확장, 사패를 이용해 농민을 괴롭힘.

 

개혁운동

 

국가의 재정 궁핍, 원의 내정간섭에 부정부패가 만연하자 공민왕의 개혁이 발표.

 

1. 원 황실 내분과 한족의 봉기로 원의 세력 약화

2. 원의 연호/변발 금지, 정동행성/정방 혁파, 도평의사사 정비

3. 기철 세력 제거, 쌍성총관부 공격

4. 신진사대부 육성

5. 승려 신돈 기용하여 전민변정도감 설치, 신돈 숙청 후 개혁실패

6. 명 건국, 친명파 개혁 주장

7. 홍건적 고려 침임, 왜구 침익

8. 신진사대부/성리학 : 정몽주, 김구용, 정도전, 친명외교, 사회개혁 추진

 

 

고려 후기.

 

초조 대장경의 소실로 팔만대장경  판각

문익점의 목화씨, 최무선의 화약, 농상집요 수입으로 새로운 문물 사용

 

역사 서술 

 - 삼국유사 : 승려 일연, 민간의 전승과 불교사적 내용이 풍부 ( 단군신화)

 - 제왕운기 : 이승휴, 유교이념을 바탕으로 국가질서 회복 기원, (단군신화)

 - 동명완편 : 이규보의 서사시, 고구려 계승의 자부심

[문제]

 

광종은 노비안검법, 과거제, 4색공복제도, 광덕/준풍 연호 사용이라는 업적이 있다.

원이 쌍성총관부를 공격한 것은 1356년 공민왕의 개혁에서 부터이다.

 

송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금과는 군신관계를 수립하였다. 또한 사신 왕래를 통한 무역도 성행하였다.

일본과도 교역하고 대마도 조공, 거란, 여진과 민간무역, 조공/회사무역/사행이 있었고

아라비아와 교역하였다.

 

정답은 3번

 

농민, 천민의 봉기는 다음의 순서다.

 

창주, 철주, 서경유수 조위총, 공주 명학소 망이/ 망소이, 전주관노, 김사미/효심, 개경 사노 만적, 경주, 담양 순이다.

 

따라서 가, 나 1번이 정답이다.

신진 사대부 계층이 권문 세족에 대항하여 새로운 세력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이들 신진 사대부 계층은 대체로 하급 관리와 지방의 중소 지주 출신으로서, 유교의 학문적 교양을 쌓고, 과거를 통해 중앙 정계에 등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경제⋅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개혁 정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충선왕의 개혁정치와 충목왕대(1345~1348) 정치도감(整治都監)의 개혁 활동이 원간섭기에 신흥사대부가 참여한 대표적인 개혁자기를 선발해 준 고시관을 스승처럼 여겨 양자 사이에는 좌주·문생제(座主門生制)가 성립

기황후(奇皇后, 1315년 ~ 1369년)는 원나라 토곤 테무르 카안의 세 번째 제1카툰이다

 

 

독서 상품과는 신문왕이 실행하였다.

 

태조는 훈요십조 :고려 태조가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해 942년(태조 25)에 몸소 지은 열 가지 유훈

조세/부역 경감,

역분적 지급 (역분전(役分田)은 940년(태조 23년)에 통일에 공을 세운 신료, 군사들에게 관등에 관계없이 인품과 공로만을 기준으로 지급한 수조지)

 

호우총 :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호우(그릇)[4]이 발견되어 호우총

금동대향로 :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금입택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있던 귀족들의 대주택.쇠드리댁·금드리댁.
고려의 상감청자는 고려만의 독창적인 산물이다

 

공민왕, 신돈으로 개혁을 추진하였지만 신돈의 죽음으로 개혁 실패.

동명왕편》(東明王篇)은 고려 때 문인 이규보가 고구려 시조 주몽에 대해 오언고율(五言古律) 형식으로 지은 5언체 서사시이다.

 

1번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별무반은 여진의 침략과 관계가 있다.

서희는 요 소손녕이다. 

기벌포 전투는 나당전쟁과 관련이 있다.

몽골의 침입으로 최이 강화도 천도가 있었다.

삼별초는 대간이 아니다.

삼별초는 최이의 호위부대로 무신집권에 탄생하고 서남해안을 장악하여 여몽 연합군에대해 항쟁하였고 진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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