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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한국사의 이해(삼국)

by oncerun 2023.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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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

 

나 집단이 연맹체를 형성했다.

5부 체제로 계루부,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로 이루어졌다.

 

태조대왕(47-165)

강력한 중앙집권으로 고대국가 체제를 확립했다.

동예, 옥저를 정벌하였고, 갈사국 병합, 예맥국들과 함께 후한에 대항하였다.

 

[문제]

 

수로를 사비로 옮긴 것은 태조왕의 활동이 아니다. 

정답 3번.

 

 

고국천왕(179-197) 

왕권 강화 :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 을파소 국상등용, 진대법을 실시

진대법이란 흉년/충군기에 농민에게 양곡을 대여하여 구휼

 

미천왕( 300-331)

한군현과 대립, 요동 정벌하였다. 현도군을 공격하였고, 서안평을 점령하였다. 낙랑군, 대방군을 병합했고, 현도성을 공격하였다. 

 

소수림왕 (371-384)

관료체계 확립하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설립했다. 불교 전래, 율령반포

 

광개토왕 (391-412)

태왕호칭, 영락 연호를 사용했다.

거란 정벌, 패려 정벌, 숙신 정벌하였다.

백제의 석현성/관미성을 정복하였고 여백전쟁으로 위례성을 포위했다. 

신라의 왜군을 격퇴한 시기다.

후연의 숙군성, 요동성, 목저성 격파, 동부여 정벌- 요동장악

 

장수왕( 412-491)

남진 정책, 평양 천도, 중국의 남북조 여러 왕조들과 화친을 하였다.

나제동맹 이후 백제 위례성을 정복, 개로왕 전사시켰다. 신라의 호명성을 정복했다.

 

영양왕(590-618)

중국을 통일한 수건국 이후 문제/양제의 침공(을지문덕 살수대첩)

 

영류왕 (618-642)

당건국에 대해 화친을 수용하였고, 천리장성구축, 강경파 연개소문의 반정

 

보장왕 (642-668)

나제전쟁으로 신라의 선덕여왕은 김춘추를 보내어 원군요청을 하였지만 거부하였다.

이후 당 태종의 침략( 안시성전투)

 

 

2) 백제

 

마한의 속국 중 하나로 시작, 온조왕, 하남 위례성에 위치.

 

고이왕(234-286) 

6 좌평 16품의 관등 체계 정비, 율령반포, 중국의 서진/군현과 외교

 

근초고왕(346-375)

정복전쟁 및 왕권 강화, 고구려 고국원왕 전사시켰다. (371), 왜 야마토 왕조와 국교

 

문주왕 (475-477) 

웅진 천도

 

무령왕(501-523)

통치 체제 정비 - 22개 담로(읍) 설치하여 왕족을 파견, 고구려와 대립, 남조  양/왜와 교류

 

성왕(523-554)

사비 천도, 국호 남부여, 고구려 땅을 회복하였으나 신라에게 빼앗기고 나제동맹을 파기하였다.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22부 5부 5방 설치, 불교 진흥, 왜에 불교 전파하였다.

 

 

3) 신라

 

BC 57 진한의 사로국에서 시작, 박혁거세 거서간

박, 석, 김 씨 세력 -> 김씨 왕권 독차지

 

지중왕(500-514) 국호 신라, 마립간에서 왕으로 왕호 변경, 순장 폐지, 우경법, 우산국 정복(울릉도)

 

법흥왕 ( 524-540)

율령 반포, 불교공인, 백관공북 제정, 중앙집권체제 완비, 골품(성골/진골)/6두품 제도 정비 상대등 설치

건원 연호 사용, 금관가야 정복

 

진흥왕(540-576)

국사편찬, 개국 연호 사용, 한강 유역차지, 대가야 정복, 강원도/함경도 진출 순수비 건립

 

태종무열왕(654-611, 김춘추)

나당연합으로 백제 정복, 백제부흥군 진압

 

문무왕(661-681)

고구려 정복, 나당전쟁을 통해 삼국 통일

 

4) 가야

 

김해 구야국 , 수로왕을 중심으로 변한의 12개 소국들이 결집해 전기 가야 연맹 설립

 

옥, 철 생산하였고 고구려와 항쟁에서 연패, 고령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후기 가야 연맹을 현성

신라에 병합되었다.

 

가야인들은 신라 사회에 편입하여 정치/군사/문화 부분에서 활약함.

 

 

삼국의 지배체제

 

- 고구려 : 제가 회의

- 백제 : 정사암 회의

- 신라 :  화백 회의

 

생산력의 발달을 위해 국가의 농업 장려하였고 철제농기구, 우경의 보급으로 수확량이 늘고 수리시설을 확충했다. 모내기는 아니지만 벼농사를 시행했다. 

 

국가의 수취는 사람과 토지에 부과하는 방식이었다. 

 

불교

- 왕을 중심으로 고대국가 발전과 왕권의 확립을 정당화.

- 윤회설은 현실의 불평등과 신분제 수용을 뒷받침

 

유교

 - 신라의 진흥왕 순수비, 임신서 기명석, 태학, 오경박사

 

 

[문제]

 

1. 연등회 : 연등은 佛·菩薩에 대한 공양의 한 방법으로, 등을 달고 밝게 불을 켜 놓음으로써 번뇌와 무지로 가득한 어두운 세계를 밝게 비추어 주는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의식이다.

 

2. 팔관회 : 팔관회는 진흥왕(540∼575) 때 신라의 전통적 제천의식에 불교적 요소를 가미시켜 만든 遺風으로서 나라와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던 국가적 규모의 행사였다.

 

3. 부채제 : 고구려의 5부, 신라의 6부, 백제의 부여·고구려계 이주민집단으로 구성된 부 등은 원래 그 각각이 부족이나 소국의 성격을 지닌 단위정치체였다. 이들은 삼국 성립기에 연맹체를 형성하여 삼국 건국의 주체가 되었다. 삼국이 팽창해나감에 따라 여타 피정복지역의 지배층 일부가 이들 부의 주민으로 편입되었다.

 

4. 외왕내제 : 외왕내제(外王內帝)는 대외적으로는 자국의 군주를 왕으로 칭하지만 속내는 황제로 내세우는 체제이다.

 

 

골품제는 신라 사회를 운영하는 데 중요한 기본 원리가 되었다. 관등제(官等制)나 관직 임용은 골품제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졌다. 골품에 따라서 취득할 수 있는 관등의 상한선이 정해졌고, 그 결과 임명될 수 있는 관직도 제한되었다.

 

 

안시성 관련 전투는  고구려 보장왕의 이야기다. 정답은 매소성이다.

 

고분은 사람의 시신을 매장한 시설물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고구려의 영양왕 시기에 중국을 통일한 수건국 이후 문제/양제의 침공이 있었고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에서 대승을 이루었다.

 

 

 

나당 동맹 이후 백제 멸망-> 고구려 멸망 ->나당전쟁 순이다.

 

1, 이차돈 : 신라 법흥왕 시대의 인물로,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에 해당하는 사인(舍人) 직책을 맡고 법흥왕의 측근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한 뒤 왕위를 진흥왕에게 물려주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될 만큼 불교의 유입에 적극적이었다. <이차돈설화>는 불법(佛法)을 일으키려는 법흥왕의 의중과 더불어 왕명을 거역하는 자의 최후가 어떤가를 보여 줌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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